나에게 건담이란

          <1/144 RX78 30주년 기념판>

1. 대략 10년 만에 만든 건담이로구나. 그 동안 금형기술이 겁나게 좋아졌구나. 그리고 졸라게 비싸졌구나. 
2.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혹은 무엇을 해야할지 모를 때, 나는 이런 짓을 한다.  프라질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머릿속이 하얗게 초기화된다. 한참 프라질일 때 말을 걸면 나는 맹구 목소리로 요들송을 부를 수도 있다. 돈ㅈㄹ한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째든 나한테는 이게 정신건강에 꽤 좋다.
3. 나는 진실이 탄로나는 게 두렵다. 얄팍한 만큼 쉽게 까발려지리라. 사실 나는 맹구 목소리를 아주 잘 낸다.

by Croquis | 2009/11/08 03:12 | 긍정적사고방식 | 트랙백 | 덧글(0)

사랑니 뽑다가 턱뼈 깎을 뻔한 이야기

 지금 내 입 속에는 총 세개의 구멍이 있다. 가장 큰 목구멍이 있고 비교적 작은 두 개의 구멍이 있는데 그 것들은 모두 몇 주 전까지 사랑니가 있던 곳이다. 나는 요즘 새로 생긴 구멍을 관찰하는데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양치 후 입을 행구다가, 책을 읽다가, 담배를 피우다가 문득문득 거울 앞에서 성난 사자처럼 입을 벌리고 서있다. 사랑니를 뽑은지 이주일이 지났는데 구멍은 여전히 깊고 어둡다. 사랑니가 확실하게 누워있는 바람에 뽑는데 고생을 조금 했다. 나는 맹장을 뽑아낸 경험도 있지만 이보다 더 오래 걸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물론 맹장 수술을 할 때에는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사랑니를 뽑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순전히 뻥이다.- 내 입 속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작업에 열중하던 의사는 어찌나 집중을 잘 하던지 긴 시간동안 내 입을 벌려놓고 한숨 한 번 쉬지 않았다. 아마 그는 내가 홧김에 입을 다물고 그를 잘근잘근 먹어 치웠어도 몰랐을 것이다. 그랬다면 나는 여전히 사랑니로 고생하고 있었겠지만. 구멍을 관찰하게 된 이유는 의사의 위협이 가장 컸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구멍으로 음식물이 들어가 있으면 절대 안되고 만약 음식물이 들어간다면 염증이 생겨 턱뼈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수시로 구멍 속을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구멍이 깊고 넓어서 놀랐다. 의사의 위협처럼 간혹 음식물이 들어가 마치 지가 사랑니인냥 행세를 하고 있기도 했다. 나는 나의 조각같은 턱을 위해 가차없이 입을 행구고 음식물을 빼냈다. 그러면 다시 깊은 어둠이 그곳에 있었다.
 최근 며칠 사이에 구멍이 급격히 작아지고 있다. 내 몸은 과거를 잊고 싶어하는 듯 구멍을 없애고 있다. 그 동안 그 구멍 때문에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내 몸의 재생 능력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지만, 자꾸 작아지는 구멍을 보고 있노라면 섭섭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신비한 인체 탐험을 마쳐야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혹시 나도 모르게 구멍과 정을 나눈 것 같기도 하고, 또는 일거리를 잃어버린 것처럼 마냥 섭섭한 것 같기도 하다. 일년전쯤 반대편의 사랑니를 뽑은 적이 있는데 별로 고생을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상처도 쉽게 아물어 지금은 예전에 그곳에 사랑니가 있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끔하다. 일주일 쯤 더 지나고 나면 이번에 뽑은 사랑니의 고통스러운 추억도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해지겠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몸이 나를 지우고 있는 것만 같다.

by Croquis | 2009/11/05 04:13 | 긍정적사고방식 | 트랙백 | 덧글(0)

쓰레기통의 잘게 다진 종이들

 새벽이 되면 내가 쓴 글을 찢는다. 언제나 엉망인 내 글에 대해서, 그렇게 밖에 쓸 수 없는 나에 대해서 화가 났다. 글자보다 교정부호가 더 많은 노트를 한 장씩 뜯어내고 최대한 잘게 찢었다. 그마저도 수월하지 않았다. 내 손은 너무 거칠어서 찢고 버리는 것조차 거칠고 보잘 것 없다. 아무렴 어떠냐, 나는 단지 화풀이 할 대상을 찾고 있었을 뿐이다. 의미 없이 태어나 고작 화풀이의 대상이 되어 쓰레기통으로 사라지는 불쌍한 활자들, 그것들도 처음엔 무언가가 되기를 뜨겁게 바라고 있었다.
 세절기를 사려고 했으나 그만두기로 했다. 찢는 것에도 손맛이 있더라. 별일 없이 찢고 또 찢는다. 그리고 아무 것도 없다.

by Croquis | 2009/10/30 03:00 | 긍정적사고방식 | 트랙백 | 덧글(0)

내가 나를 소개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

<담양, 식영정에서 바라 본 광주호, 대략 해 질 무렵, 10월 24일 >

1. 얼마전 선양이 말하길, 넌 너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느냐, 라고 했다. 물론 있지, 어디 자기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어. 그러나 나는 목련이 떨어지 듯 제 몸하나 가누지 못하던 사춘기 이후로 나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고민한 것이 아니라 나는 이렇다고 결정한 후 그 결정에 후회하지 않도록 살기 위해 애쓴 듯하다. 선양은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재미에 빠져 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조금 부러웠다.
2. 소소한 이유로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다. 자기소개서를 쓰는 일은 여러면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첫째로 분량을 맞추는 일이 어렵고 둘째로 우주에서 빙글빙글 떠도는 무형의 나를 문장으로 고착시키는 일이 어렵다. 용도에 맞게 쓰는 것이나 주제를 고르는 일은 앞서 말한 어려움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모르겠다. 용도에 맞게 쓰기 위해 분량을 맞춰야 하고 주제를 찾기 위해 무형의 나를 유형으로 고착시키는 것일지도. 사실 가장 어려운 일은 자기 소개서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자꾸만 과거에 머물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치졸한 과거로 이루어져있고, 앞서 말했듯 어느샌가 결정된 나의 모습에 맞춰서 만들어진 인물이기 때문에 남에게 순순히 내보일만한 진실한 나는 없다. 없는 것을 쓰자니 지어내야 하고 지어내자니 없는 것이 되니 자기소개서라는 문서의 생성이 모순 덩어리가 되고 만다. 솔직하고 진실하게 쓰려고 노력할수록 나는 거짓이 된다. 나는 원래 거짓이니까.
3. 사춘기의 끝은 아마도 내가 나를 결정한 순간이리라. 그게 언제 적이더라, 생각해보니 8년 쯤은 지난 듯하다. 너무 오래되었다. 지금쯤이 자기소개서를 새로 쓰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인 것 같다.

by Croquis | 2009/10/28 04:01 | 긍정적사고방식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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