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존 대명사 '나'

 어디에든 의지하는 것은 나쁘다. 계절학기 수업은 새로 지은 국제관 5층에서 네 시간을 연달아 강의한다. 새로 지은 건물이라 깨끗한건 물론이고 얼어죽지 않을 만큼 냉방이 가능하다. 한낮의 더위를 식히기에 최적의 장소다. 실제로 나는 해가 뜰무렵 잠이 들어 강의 시작 한 시간전에 일어난다. 일어나면 땀이 나기 전에 강의실로 직행한다. 강의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해가 질때까지 다시 잔다. 이 정도하면 계절학기 수강료가 아깝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국제관은 한 여름의 조치원 체류에는 최적의 장소라고 생각하다가도 단 한가지 단점이 최악의 장소로 만들기도 한다. 5층 건물에 흡연실이 없다.
네 시간 연강은 나처럼 담배를 입에 물고 사는 인간에게 생의 끝을 보여주기도 한다. 두 시간이 지나도 쉬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때에는 정말 칠판이 누렇게 보인다. 보통 한 시간 반의 수업 진행후 쉬는 시간을 갖는데, 문제는 건물에 흡연실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강의실은 5층이다. 엘리베이터는 단 두 대뿐이고 층마다 서기 때문에 기다리다가는 목숨이 위태롭다. 그래서 나는 뛴다.1층까지. 피우고 나면 다시 뛴다. 5층까지. 쉬는 시간이 끝날 무렵 강의실로 돌아오면 온몸이 땀에 젖어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는다.
부질없는 짓임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이 방법뿐이다. 좀 참으면 되지 않느냐는 친구의 충고는 씹어서 뱉는다. 너는 참을 수 있으니 부러울 따름이구나.
담배에 대한 의존도가 언제부터 높아졌는지 모르겠만, 의존이라는 것은 대단히 괴롭고 난처한 일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해주는 계절학기다.

의존하지 않는 것이 존재할까. 나는 우리 어무이의 아들이자 K대의 학생이고 누군가의 친구이다. 이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이글루스의 회원이며 블로깅을 하는 Croquis이다. 사람은 자연스럽게 의지되어 있는 존재다. 의존하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누가 그 존재를 존재한다고 인정할 수 있을까.
밀폐된 공간에 생명이다. 그것은 사람이다. 그는 세상에 존재한 이후로 사람과 접촉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를 존재한다고 말 할수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존재하는지 안하는지 알 수 없다. 설사 존재한다하더라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증거가 아무것도 없다. 누구도 그를 볼 수 없고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이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은 타인에 의한 검증이다. 검증을 위해서는 '나'가 아닌 누군가가 필요하기 때문에 인간은 의지하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

나의 존재자체가 의지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마당에, 그 깟 2100원짜리 담배에 의존하는 것이 뭐 얼마나 더 큰 흉이겠는가. 하지만 그 깟 2100원짜리 담배때문에 존재의 전제가 위태로워진다면 그또한 얼마나 무기력한 일인가.
존재를 위해서라도 학교는 국제관 건물에 층층마다 흡연실을 설치해야 한다. 울컥.


by Croquis | 2006/07/05 01:45 | 회의적 세계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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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동동 at 2006/07/06 13:22
결론은, 나 꼴촌데, 못참는데! 왜 흡연실도 안 만들어주고! 이거네? -_- 니가 한 말 기억나냐? 아마 너랑 나랑 깡소주따고 돌아가던 날 중 하루였을텐데, '나는 절대 담배 안펴'이랬었지. 그 담학기에 니가 조치원에서 자취를 하고, 그 담학기부터 니 입에 물려 있는 담배를 봤어. 속으로, '병신...'이러면서 지나쳤지. 훗훗. 살아는 있냐?
Commented by Croquis at 2006/07/06 16:11
그런 말을 했었나..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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