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편의점은 정말 좋은 곳이다. 사고 싶은 물건들과 사야할 물건들, 그리고 온갖 사연들을 종이돈과 함께 계산대 위에 풀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편의점은 욕망과 편의의 절충점 정도가 될 듯하다.
2. 새벽 4시가 되면 일간 신문이 배달된다. 4시 30분이 되면 매장 건너편에 그랜져가 주차를 하고 츄리닝을 입은 중년의 남자가 편의점으로 걸어온다. 그는 언제나 신문과 맥주를 산다. 그 외의 물건을 사는 것은 낮이나 밤이나 본 적이 없다. 그에게 편의란 신문과 맥주다. 나는 그 무렵이면 책을 읽거나 외국어 공부를 하며 그가 매장으로 들어와 은근슬적 참견해 주기를 기다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든 새벽에는 유난히 사람의 목소리가 그리운 법이다. 그도 그랬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최후의 생존자마냥 심심한 몸짓으로 서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금새 친해졌다.
눈섭 아래로 치렁치렁하게 내려온 곱슬머리를 그 새벽 시간까지도 단정히 이대팔로 가르고 은색 안경을 쓴 중년의 남자, 내가 읽는 책마다 평가아닌 토를 달아주는 그에 대해, 이쯤에서 나는 그의 직업이 궁금했다. 새벽 4시에 버드와이져 캔을 네 개씩 비우니 아침에 출근하는 셀러리맨은 아니고, 그랜져를 타고 가끔은 고급 양복을 걸친 채 나타나기도 하니 백수라 보기도 어렵다. 내가 읽는 책마다 토를 달아대니 제법 책 좀 읽은 사람이다. 나는 얼마 전 궁금함을 참지 못하여 직업이 무어냐 물었다. 그는 '허접스런 일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결론은 둘 중 하나다. 제법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거나 정말 허접스런 사기꾼이거나.
3. 지난 새벽, 매장 안에 울려 퍼지는 소녀시대 'gee'를 듣던 그가 말했다.
"저 애들은 저렇게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 얼마나 연습했을 것 같아?"
"아마 4, 5년은 되겠죠?"
"맞아, 못해도 6년은 아무도 봐주지 않는 연습실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겠지. 아저씨도 그렇게 하면 돼. 세상은 별거 없어. 끝까지 한우물만 파는 놈이 물꼬를 트는 거야."
나는 공공연한 진리만큼 사람잡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가당찮은 희망과 기대에 흠씬 두들겨 맞은 후에야 진리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걸 알게 되니까. 그러나 그의 말은 어째 의미심장했다. 정말 그런것만 같다고나 할까.
나는 그가 사기꾼이 아니길 바란다.
4.새벽의 편의점에는 알바가 있으니 그 또한 편의가 아닌가. 사기꾼일지라도 편의는 필요하다. 놀러오시라 심심한 알바가 커피믹스를 타주는 새벽 편의점으로
- 2009/03/30 17:56
- monoeffect.egloos.com/4102431
- 덧글수 : 4





덧글
누구 2009/03/30 22:55 # 답글
오우~ 그런 편의점이 있다니요. 그건 그렇고 우선, 오랜만이십니다. 'ㅁ'
Croquis 2009/03/31 09:25 #
누구님의 블로그는 항상 주시하고 있습니다. ㅎㅎ
블루데이 2009/03/30 23:15 # 답글
사기는 허접스러운 일이지만, 사기꾼이라면 허접스러워서는 그랜져를 몰 수 없지.
Croquis 2009/03/31 09:25 #
오오, 정말 그래. 어쨌든 '허접'이란 겸손의 말이구나;